2007년 10월 09일
빌리 와일더와 할리우드 (2) [이중 배상]
연합군이 프랑스의 노르망디 해안에 상륙함으로써 2차 대전의 운명을 바꾸며 종전을 향해 치닫던 1944년은 할리우드에서 느와르의 걸작들이 대거 탄생한 해이다. 할리우드 시스템 내에서 자기경멸적인 전복의 서사를 다룬 빈센트 미넬리의 [세인트루이스에서 만나요]로 포문을 연 느와르물의 붐은 오토 프레민저의 [로라]를 거쳐 조지 큐커와 잉그리드 버그만이 만난 [가스등]에 이른 후, 레이먼드 챈들러의 손길이 닿은 두 편의 영화, 에드워드 프레드릭의 [안녕 내 사랑]과 빌리 와일더의 [이중 배상]에서 정점을 찍게 된다. 다른 분위기를 띤 알프레드 히치콕의 [구명보트]가 만들어진 것도 이 해이다. 이러한 느와르의 강세 속에서도 아카데미에서는 사제로 출연한 빙 크로즈비가 거리 아이들의 생활을 개선시키는 감상적인 이야기 [나의 길을 가련다]가 상을 휩쓸었다는 점도 주목할 만 한 하다.
시작하면서
빌리 와일더의 네 번째 연출작이며 1944년 아카데미 6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된 <이중 배상>은 1920년대 미국에서 벌어진 실제 사건에 기초한 제임스 M 케인의 소설을 레이먼드 챈들러와의 공동시나리오 작업을 통해 완성된 작품이다. 이 사건을 간단하게 살펴보면, 러스 스나이더 Ruth Snyder라는 부인이 보험금을 노리고 자신의 정부 주드 그레이 Judd Gray와 합세하여 남편 알버트 스나이더 Albert Snyder를 살해하고 결국에는 사형당한 사건이었다. 요컨대 <이중 배상>은 필름느와르 계열의 작품이고 빌리 와일더가 만들었으며 ‘거짓말 서스펜스’를 차용해 진행됨과 동시에 느와르 최초로 팜므파탈이 등장하는 영화이기도 하다.(거짓말 서스펜스에 대한 설명은 뒤에서 할 것이다.) 영화의 제목인 <이중 배상_ Double Indemnity>의 뜻은 보험사에 사고보험을 들었을 경우 계약서에 기록된 특수 조항에 해당되는 사고가 나면 배상금의 2배까지 받을 수 있음을 의미하는데, 보험업계에서는 이중배상이라는 말 대신 배액지급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영화는 월터 네프라는 사내가 총을 맞은 채 자신의 사무실에 들어와 사건의 전모를 밝히고 살인자백을 하는 독특한 시퀀스로 시작된다. 이 시점으로부터 2개월 여전, 평범하고 흠 없는 서른다섯 살의 보험세일즈맨 네프는 디드릭슨이라는 기업가의 집을 찾게 된다. 두 대의 자동차 보험의 만기 연장을 위해 방문한 그를 맞이한 사람은 디드릭슨의 부인 필리스인데, 간호사였던 그녀는 디드릭슨의 전처를 간호하던 중 부인이 죽자 그와 결혼한 여자이다. 일에 쫓겨 자신에게 관심조차 두지 않는 남편을 원망하던 아내가 ‘남편이 없는 세상’을 꿈꾼다는 설정은 비단 느와르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지만, 보다 이상적인 남자도 취하고 돈도 얻고자하는 요부의 면모가 필리스에 얹혀 지면서 사건은 스릴러의 성격을 띠게 된다. 보험세일즈맨이라는 적합한 직업을 가진 사내가 나타나 자신에게 관심을 보일 때, 그를 이용한 보험범죄가 벌어지리라는 것은 쉽게 예상할 수 있을 터이다. 따라서 영화는 네프가 필리스의 꼬임에 빠져 범죄에 가담하고 임무를 완수하는 상황까지를 전반으로 하고, 이후 조여 오는 탐문조사망에 초조해하는 시간 동안 또 다른 음모의 실체를 알아가는 내용을 후반으로 진행된다.
빌리 와일더의 서사방식
필름느와르의 특정한 서사구조로서 플래시백과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의 사용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이중 배상>은 네프의 자기고백으로 시작하면서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기법을 통해 주인공의 심리상태는 물론이고 그간 겪어온 심적 갈등까지 고스란히 표현해내고 있다. 마찬가지로 오손 웰즈의 <상하이에서 온 여인 (1947)>이나 <선셋 대로 (1950)>의 경우 같은 양식을 취하고 있는 대표적 사례이다. 남자 주인공은 자신이 겪은 사건과 자신이 만난 팜므 파탈에 대해서 기억을 떠올리고 그 때 느꼈던 감정이나 사건의 추이를 1인칭 시점으로 내레이션 하는 데, 이것은 특정한 주인공에게 동일시의 관점을 부여하고 그가 겪은 사건의 충격과 심정의 변화를 한층 더 강하게 표현하는 양식으로 더 없이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레이먼드 챈들러는 빈정거리며 작가의 사명을 말한다. “이곳은 유쾌한 세계는 아니다. 하지만 당신이 살고 있는 곳이다. 어쩌겠는가. 작가라면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라고. 느와르는 이런 현실에서 느끼는 등장인물들의 불신과 혐오감을 스타일로 승화시킨다. 느와르의 조명과 화면은 폐쇄공포증과 편집증을 부추기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시각 스타일로 귀착되는 필름느와르는 유럽 표현주의에 상당한 빚을 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필름느와르가 이야기 틀을 하드보일드 추리소설에서 빌려왔다면 시각 스타일은 유럽 표현주의에 젖줄을 대고 있다.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독일인과 오스트리아인들은 1920년대 독일 표현주의의 유산을 가져왔다. 광포한 역사에 짓눌린 음산한 세계관과 더불어. 영화사가 들은 1929년 <일요일의 사람들>이란 초저예산 영화를 찍기 위해 베를린에 모였던 영화인들이 훗날 필름느와르의 주춧돌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프리츠 랑을 비롯한 유럽출신 감독들은 표현주의적 화면과 극단적인 어둠을 사용하는 조명기법을 할리우드에 도입했다. 그러나 느와르에 우아하고 어두운 눈의 날개를 달아준 이는 촬영감독 존 앨튼이었다. 그는 많은 중요한 필름느와르의 촬영을 맡았는데 혁신적인 조명기술로 할리우드에서 평판이 자자했다. "다른 촬영감독들은 노출에 맞춰 조명을 비춘다. 그러나 난 분위기를 위해 빛을 비춘다"고 앨튼은 말했다. 당시 그를 고용한 MGM의 제작자가 회고하는 바에 따르면 "앨튼은 마룻바닥에 비치는 빛만으로도 촬영을 할 수 있었고 시간을 많이 절약했다. 그래서 그는 다른 촬영감독에게 인기가 없는 사람이었다." 이렇듯 1930년대 초 이래 유럽에서 전쟁을 피해 피신한 영화인들이 미국 영화계에 그들의 기술적인 전문 지식을 이식하기 시작하면서 미국 고유의 필름느와르는 이 해부터 싹트기 시작했으며, 그런 면에서 아카데미가 빌리 와일더의 신랄한 영화 <이중 배상>에 주목한 것은 의미가 깊다.

인물을 그려내는 방식에서의 와일더식 느와르의 특징은 (여성캐릭터를 조명하는 방식과 그림자와 연기를 통해 음울하고 비정한 공간을 만들어내는 식의 느와르적 특질에서 한 치 벗어남이 없지만) 대상 인물들을 희화적으로 그려내고는 그들에게 적절한 낭만주의적 기질을 부여함으로써 파렴치한에서 멀찌감치 물러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다는 데 있다. 예를 들어 네프와 필리스가 만나 범죄를 모의하는 슈퍼마켓 장면에서 볼 수 있듯이 이들의 행동이란 유치하고 단순하기 짝이 없는데, 한 발짝의 거리차로 상대방의 시선과 귀를 피할 수 있다고 믿었던 그들의 단순함은 가장 가까운 공간에 자리한 키즈에 의해 폭로되기 이른다. 또한 감독은 예고 없는 키즈의 방문을 받고 당황하는 네프와 같은 시간 그의 집을 방문하지만 문 뒤에 숨어 두 남자의 대화를 듣는 필리스에게 죄의식을 선사함과 동시에 범죄자와 사건담당자를 한 공간에 모아놓음으로써 긴장감을 불러일으키고 사건의 수준을(그들이 그토록 신중하고 힘들게 결행했던) 가볍게 전락시켜 버리는 영민함을 발휘하기도 한다.
다만 <이중 배상>에서 주목할 것은 대사의 힘을 극대화함으로써 배우들의 연기에 날개를 달아준 각본의 출중함이다. 여기에 영화성격에 따라 인물과 배우, 배우와 대사, 대사와 인물 간을 적절하게 조절하면서 최상의 조합을 통해 최고의 완성도를 이뤄낸 빌리 와일더의 뛰어난 연출력 또한 칭찬해야 할 것이다. 이를테면 <이중 배상>의 주요배우들인 프레드 맥머레이와 바바라 스탠윅, 에드워드 G. 로빈슨 등의 연기가 나무랄 데 없음에도 그들의 모습만으로는 캐릭터와의 유사점을 찾을 수 없는 데 반해 그들이 입을 열어 대사를 시작하면 바로 네프가 되고 필리스가 되며 키즈가 되는 식이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사랑에 노예가 되어 범죄에 가담하는 결코 매력적인 신사의 모습과 거리가 먼 맥머레이와 우스꽝스런 가발을 뒤집어쓰고 팜므 파탈을 연기하지만 오히려 가정부역할에 더 어울릴 법한 바바라 스탠윅은 물론이고 <리틀 시저>에서 열연을 펼쳤음에도 왠지 예민하고 냉철한 보험회사 배상담당보다는 코미디언에 어울릴 것 같은 왜소한 체구의 에드워드 G. 로빈슨을 캐스팅하여 레이먼드 챈들러의 각본을 통해 새로운 인물들로 거듭나게 만든 빌리 와일더의 능력은 가히 일품이라 하겠다. 반면 네프와 필리스의 만남과 사건의 진행을 보면 다소 억지스럽고 개연성이 떨어지는 부분도 눈에 띠는데, 이를테면 첫 방문에서 두 남녀가 교감하고 다음 번 만남에서 살인공모에 동의하는 동안 한 눈에 반한 연인들의 모습은 찾아 볼 수 없으며, 동업자들의 우정확인 이상을 넘어서지 못하는 그들의 키스는 건조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중 배상>의 완성도에 이의를 제기하는 이는 드물다. 이는 유럽에서 장인들과 작업을 하는 동안 빌리 와일더가 영화적으로는 느와르의 특질을 정확하게 꿰고 있었으며 미국역사의 한계성 또한 충분히 이해했다는 것으로 설명될 수 있다. 느와르는 무엇보다 스타일이기 때문에 사회적 갈등을 논리가 아니라 시각 스타일로 풀어냈고 이를 통해서 느와르는 사회학적 문제들을 미학적 해답으로 창조해낼 수 있었던 것이다.

팜므 파탈에 대한 오해 또는 진실
<이중 배상>이 제기하는 또 다른 문제는 팜므 파탈 캐릭터를 통한 당대 여성들의 사회적 위치 확인이다. 제2차 세계대전당시 많은 남자들은 전쟁터로 갔고, 숱한 공장과 회사들은 여성들로 채워졌다. 전쟁이 끝난 후 돌아온 남자들에게 돌아갈 일자리는 어디에도 없었던 것이다. 이는 1차 대전 이후 돌아온 영웅들이 갱이 되거나 무위도식 하며 사회의 골칫거리로 전락한 예와 같으며 월남전 이후 고향으로 돌아온 병사들의 무기력과 사회의 냉담함 속에 이중 상처를 겪는 것과 동일하다. (라울 월시의 <포효하는 20년대>나 윌리엄 와일러의 <우리 생애 최고의 해> 올리버 스톤의 <7월 4일 생>을 보라) 즉, 전쟁에서 승리하여 금의환향한 그들에게 남겨진 것이라곤 빛바랜 훈장뿐이었다. 일터는 여성으로 대치되어 남성의 위치를 위협하면서 가부장제에 역행하는 사회분위기를 자아내었다. 따라서 위협적인 여성으로 그려지는 팜므 파탈은 그런 시대 남성들의 불안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많은 필름 느와르에서 그러하듯이 정말로 위험한 팜므 파탈은 끝내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것, 이를 통해 남성들의 가부장적 권위를 회복시키려는 의도가 느와르에서 팜므 파탈의 또 다른 역할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중 배상>에서 빌리 와일더가 그려낸 필리스를 팜므 파탈로 규정하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어 보일 수 도 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나는 이 점에 주목하려고 한다.
선형구조를 가진 범죄서사를 보면 사건의 발단 요인이 있고 사건 당사자가 추구하는 목적이 있기 마련이다. <이중 배상>에서 필리스의 목적은 남편을 죽여 자유를 얻고 보험금도 받아내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차라리 목숨을 끊는 게 나을 만큼 숨 막히는 공간과 남편’이 그녀를 추동한 원인이 될 것이다. 언뜻 보면 이해 가능해 보이지만 사실은 전적으로 필리스의 진술에 의존한, 네프의 녹음 내용일 뿐이다. 반면 네프는 매력적인 여인과 멋진 삶을 시작할 수 있다는 목적을 가졌으나 그가 필리스의 계획에 동조하게 되는 결정적 원인은 어디에서 나타나고 있지 않다. 쉽게 말해서 필리스의 환경이 비교적 자세히 설명되고 있는데 반해서 네프는 그저 문제없는 보험세일즈맨으로 나올 뿐이라는 점이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은 고치기 힘든 법이고 불치병이라는 단어로 통칭되기 마련이다. 네프는 원인 없는 목적에 사로잡혀 범죄를 저지르지만 사실 그는 필리스의 목적에 이용당함으로써 원인을 공유하는 처지에 놓이는 것이다. 따라서 오로지 그녀의 치명적 매력과 유혹 때문에 네프가 가담했다는 논리에 근거하여 비평가들은 그녀를 팜므 파탈로 규정해 버렸다. 하지만 그들의 논리에 순순히 따르는 것이 옳은 일인지 생각해 볼일이다.
「팜므 파탈」은 단어 그대로 해석하자면 '치명적 여자'를 뜻한다. 남성을 계획적 정략적으로 이용하여, 파멸로 이끌거나 남자의 인생 또는 나아가 국가의 존망까지도 위험하게 만드는 여자를 통칭하는 말이다. 때론 그 대상이 인류 전체를 향하기도 하는데 대표적 예가 원죄를 만들어낸 '이브' 라고 주장 하는 이도 있다. 다만 이들의 문제에 있어 남성의 책임은 어떻게 해결되어야 하는 것인가라는 점인데, 역사의 사실을 냉정히 살펴보면 남성중심의 역사에서 실제로 여자의 역할은 미미하기 짝이 없었다. 이는 고대국가나 21세기를 막론하고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무엇보다 남성사적 역사기술의 형태에 비추어 볼 때, 이들 팜므 파탈은 역사의 희생양이나, 남성이 맡아야 할 책임의 전가 대상으로 추락한 흔적이 곳곳에 보인다는 점이다. <이중 배상>에서 네프와 필리스가 처음 만나는 장면으로 돌아가자.
디드릭슨의 집을 방문한 네프가 처음 본 것은 선탠가운을 걸친 채 2층 발코니에 서 있던 필리스였고, 그녀가 계단을 내려오는 동안 네프의 시선은 줄곧 그녀의 발목을 주시하고 있다. 기어이 “정말 발찌가 아름답다”는 작업성 멘트를 시작으로 첫 대면에서부터 노골적인 시선과 추파를 던지며 상대의 관심을 불러일으킨 것은 네프 쪽이었다. 첫 대면에서 필리스의 매력에 사로잡힌 네프가 집을 떠나면서 그녀와 나누는 대화를 살펴보자.
(필리스) “남편을 만나고 싶어 하지 않았나요?”
(네 프) “처음에는 그랬는데, 이제는 생각이 좀 바뀌었죠”
(필리스) “이곳에는 시속 70킬로미터의 속도제한이 있어요”
(네 프) “경관님 제가 얼마로 달리고 있나요?”
(필리스) “140킬로 달리고 있어요”
(네 프) “그럼 어서 위반딱지를 떼어주세요?”
(필리스) “이번엔 경고만 하죠”
(네 프) “싫다면요?”
(필리스) “그럼 손을 비틀어야죠.”
(네 프) “울면서 어깨에 기대면요”
(필리스) “남편 어깨에 기대는 게 어때요.”
두 사람의 대화에서 알 수 있듯이 끈적끈적하고 음기 가득한 대화를 통해 그들은 서로의 속내를 감추거나 엿보이면서 다음을 기약하고 있다. 그리고 예상대로 필리스가 네프의 집을 방문하면서 그녀의 계획은 현실로 드러나게 된다. 여기까지만 본다면 필리스의 의도대로 네프가 음모에 걸려든 형국이다. 하지만 첫 만남에서 필리스가 사고보험에 대해 물어보았음에도 “그때는 전혀 눈치 채지 못 했다” 는 네프의 진술을 믿는다 하더라도 그는 필리스의 유혹이 비집고 들어갈 여지를 처음부터 만들어놓고 있음이 발견된다. 즉 여성의 유혹이 시작되기 이전에 남성의 시선이 움직이며 그녀들을 바라보는 남자의 시각과 심리변화가 뚜렷하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영화는 남성에게 일어난 결과에만 포커스를 맞추고 여주인공을 팜므 파탈로 규정짓는다. 이러한 시도는 영화 내내 그녀의 움직임을 따라다니는 그림자와 그녀 위에 비추인 과도한 조명과 번들거리는 립스틱 위에 깔린 악의 기운을 카메라기법으로 재현되고 있다. 네프는 자신의 주장대로 흠 없이 잘 나가는 보험세일즈맨이었지만, 욕망에 사로잡힌 한 순간의 판단미스로 자신과 다른 이의 인생을 파멸로 이끈다. 그러므로 필리스가 팜므 파탈로 영화 속 사건의 단초를 제공한 여인이라면 그녀의 계획을 구체화하고 현실화시킨 네프의 행위는 오히려 범죄의 주체로 보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내내 그의 독백은 자신의 범죄행위를 뉘우친 다기 보다는 사건의 초점을 필리스에 맞추면서 자기변호에 급급해하는 내용을 담고 있고, 영화 전반을 관통하는 기운 역시 필리스의 악녀성에 희생당한 남자의 이야기를 느와르의 외피로 입혀 서둘려 마감해 버리는데 일조하고 있다. 이렇듯 실패한 역사의 책임을 나약한 여성에게 전가하려는 남자들의 무책임은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남성들이 내제된 불온한 욕망과, 왜곡된 성적욕구를 제어 시키지 않는 한, 책임의 일부를 여자에게 떠넘기려는 시도가 계속 되는 한, 누구라도 자기만의 팜므 파탈을 스스로 만들게 될 것이라는 것, 어쩌면 <이중 배상>이 제시하는 또 다른 훈계일 수 도 있다.

거짓말 서스펜스
필리스의 사주로 디드릭슨을 살해하는데 성공한 네프는 예기치 않은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사건 당일 증인까지 염두에 둔 치밀한 알리바이를 만드는 데 성공하지만, 외부로는 디드릭슨의 딸 롤라에 대한 연민과 그녀의 입을 통해 들은 필리스의 요부기질을 확인하며 혼란에 빠지고, 내부로부터 조여 오는 키즈의 사건추리력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목적한 바를 달성한 후 아름다운 여인과의 위험천만한 재회를 꿈꾸는 네프에게 철저한 프로정신과 탁월한 직감을 지닌 키즈는 그들이 넘어야 할 마지막 관문인 셈이다. 이때부터 영화는 네프와 그의 상사이자 배상청구 심사담당인 키즈 사이에서 벌어지는 보험금청구를 둘러싼 심리적 충돌을 통해 새로운 재미를 불러일으키게 된다. 이를테면 <이중 배상>의 후반부는 ‘거짓말 서스펜스’를 기제로 사용하면서 긴장감의 극대화를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거짓말 서스펜스란 무엇인가. 쉬운 예로 설명을 하자.
학창시절 용돈을 벌충하는 방법으로 참고서나 급식비 등의 금액을 올리거나 아예 없는 용도를 만들어내어 부모님께 돈을 타낸 기억을 떠올리면 간단해 진다. 일단 목적하는 것을 손에 쥐긴 했으나 문제는 이때부터 벌어지는데, 혹시라도 참고서를 보자고 하지는 않을까. 영수증을 가져오라고 하지는 않을까. 혹은 부모님 사이의 대화에서 참고서나 급식비와 관련한 단어만 나와도 가슴 두근거림과 안절부절 못하던 그 심정. 바로 거짓말을 한 후 이것이 들통 날까봐 온통 촉수를 곤두세우고 예의주시하며 가슴을 쓸어내리는 숨 막히는 긴장감을 일컬어 ‘거짓말 서스펜스’라고 칭한다. 하물며 매일 얼굴을 맞대야 하는 사이임에랴! 이 영화를 끌어가는 것은 보험회사 직원과 요부 사이에서 벌어지는 애정과 배신, 탐욕의 서사이지만 재미와 긴장감을 극대화시키면서 빼어난 느와르로 완성시켜주는 것은 거짓말 서스펜스에서 비롯된다. 그렇다면 <이중 배상>에서는 어떻게 거짓말 서스펜스를 차용하는가.
배상심사 담당자인 키즈 입장에서 보면 디드릭슨의 죽음은 기차에서 사고를 당했을 경우 보험금의 2배를 받게 되는 이중배상과 맞물린 중대 사안이다. 하지만 사망자가 사고사가 아닌 것으로 볼 수 없는 어떤 단서도 찾지 못하는 가운데서 키즈의 예리함은 빛을 발하게 된다. “이 큰 방을 차지하고 있다고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보험사 사장이 유추해낸 것이 고작 자살로 간주하는데 반해 키즈의 탁월한 능력은 이때부터 발휘된다. 사람의 심리를 쥐락펴락하면서 네프를 긴장하게 만드는 그는, 보험금지급 거부를 위해 자살을 확신하는 사장에게 “시속 16마일로 달리는 기차에서 자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니 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내용의 소신발언으로 “키즈, 그때는 정말로 당신을 안아주고 싶었다”고 토로할 만큼 네프의 마음을 안도시키더니, 네프의 집에 찾아와서는 “우리가 놓친 것이 있었다. 디드릭슨이 다리를 다쳤는데, 왜 그때 보험금 청구를 하지 않았을까. 아마도 자신이 보험에 든 사실을 몰랐을 것”이라는 기막힌 추측으로 부인인 필리스 외에도 공범이 한 명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전달한다. 그러니 애써 긴장을 감추는 네프의 표정과 달리 신명나게 살인자의 머릿속을 파헤치는 키즈의 달변을 듣다 보면, 책상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매일 얼굴을 마주해야 하는 상사의 서슬 퍼런 추리력 앞에 선 네프의 가슴 떨림이 어찌 와 닿지 않겠는가. 비록 이미 사건의 전모를 알고 있는 관객일지라도.

느와르에 스며든 기이한 낭만
<이중 배상>에는 필름 누아르의 어두운 그림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기이한 낭만도 스며들어 있다. 디드릭슨의 집을 처음으로 방문한 네프가 필리스로부터 사고보험에 대한 질문을 받은 후 내뱉던 “살인에서도 때로는 허니 서클 향기가 난다는 걸 내가 어떻게 알았겠는가?”라는 자조 섞인 대사가 그러하다. 게다가 변함없을 것이라 여겼던 두 사람의 애정이 무너지는 것은 네프가 디드릭슨의 전처 딸인 롤라를 만나게 되면서 부터인데, 아버지를 잃은 가련한 숙녀에게 연민을 느낌과 동시에 그녀에게 마음을 빼앗기는 네프는 비정함과 거리가 먼 로맨티스트의 풍모를 보여주기도 한다. 반면 철두철미한 키즈의 경우 보험범죄를 저지른 사람의 심리를 파악하고 한 치의 오류도 범하지 않는 인물로 그려지지만 정작 가장 가까운 사람인 네프에게 마음을 들키고 자신의 믿음을 이용당하는 순진함마저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영화가 지닌 낭만의 정점은 뜻밖의 장면에서 발견 된다. 범죄사실을 녹음하던 자신을 오랫동안 지켜본 키즈의 등장으로 다시 한 번 실패한 네프가 그의 호감을 이용해 도주에 필요한 네 시간을 얻으려는 순간, “우린 그(책상 하나 사이)보다 더 가까웠”다는 키즈의 말에 화답하듯 네프의 마지막 일성(“나도 당신을 좋아해요”)의 야릇한 뉘앙스를 빌어 범죄자의 파국마저도 남자들의 우정을 넘어선 애틋함으로 덮어버리는 방식이 그러하다. 그리하여 국경을 넘는 데 필요한 네 시간을 달라는 네프를 향해 “자네는 거기까지 가지 못 할 걸세. 엘리베이터까지도 갈 수 없을”거라 말하던 키즈의 안타까운 눈빛과 더불어 영화는 마침표를 찍는다.
나가면서
미국의 근간을 이루는 이념은 두 말 할 나위 없이 개척정신과 청교도정신이다. 할리우드가 탄생한 이래 미국 영화는 이 두 개의 정신을 고수하고 유지하면서 발전해왔다. 특히 양차 대전 기간 동안 할리우드 영화는 자국민들에겐 애국심의 고취를 통해 보수적 이데올로기를 설파했고 유럽 각국에 터전을 세우면서 미국적 가치관과 미국적 삶의 환상을 심어놓기 이른다. 미국의 질서는 곧 세계의 질서를 의미하기도 했다. 이러한 질서를 위반하지만 않는다면, 합리적 생활양식에 의거하여 노력하기만 하면 누구나 그 질서 내에서 성공을 보장받았다. 아메리칸 드림의 최대 수혜자는 갱들과 유럽에서 온 이민자들이었다. 달리 말하면 양차 대전을 피해 미국으로 건너온 유럽감독들에 의해 미국의 필름느와르가 형성된 반면 이들이 만들어낸 영화로 인해 미국적 가치관이 전복 위기를 맞이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다.
느와르의 세계는 미국의 개척정신이 뒤집힌 세계이다. 갱은 저명인사가 돼 거들먹거리고 사립탐정은 역겨워서 경찰을 때려 친 사람이며 젊은 여성은 속는 것이 지겨워서 남들을 속이려고 든다. <이중 배상>의 주인공 네프는 외적으로는 문제가 없는 사내로 보이지만, 한 순간 사랑에 눈이 멀어 유혹의 덫을 피하지 못하는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 배상청구업무를 권하는 키즈의 요청을 거절함으로써 보다 나은 미래를 포기하거니와 금욕과 절제, 신앙이 덕목인 청교도 정신을 철저히 위배함으로써 자신을 파멸로 이끌고 있다. 이에 반해 키즈는 결혼도 미룬 채 일중독에 빠진 철두철미한 근대자본주의자의 상징적 인물이다. 주머니에 불이 날까봐 성냥을 갖고 다니지 않는 신경증적 성향도 그렇지만 마지막까지 이성적 판단으로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면서 네프를 병원과 경찰에 인계하려 장면에서 그의 특성은 극대화 된다. 키즈가 미국의 정신을 고스란히 이어가는 인물이라면 네프는 이를 뒤집는 사람이라 할 수 있는데, 이 둘 사이에 끼어든 필리스는 양자 모두에게 위협적 존재인 셈이다. 남편의 전처를 살해한 혐의를 안고 있는 그녀가 또다시 남편의 살인을 계획하고 사주함으로써, 가정의 몰락을 재촉하고 있는 것이다. 전쟁의 막바지 미국의 모든 산업은 군수제품의 생산과 보급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자동차 유류의 배급제 시행에서 알 수 있듯이 전쟁을 치루는 데 있어 기름의 중요성은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때문에 네프가 죽인 필리스의 남편 디드릭슨이 정유공장의 사장이었다는 점은 다분히 상징적이다. 요컨대 미국의 정신이 결여된 나약한 한 남자가 가정을 해체하고 가부장적 권위에 도전하려는 요부의 꼬임에 빠져 사적이익을 도모하는, 미국의 보수적 이데올로기로는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행위에 대하여, 미국적 가치관을 지켜내려는 할리우드 정신이 빚어낸 영화가 <이중 배상>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럼에도 빌리 와일더는 네프를 죽음으로까지 내몰지 않는다. 왜 그랬을까?

이로써 빌리 와일더 시리즈의 두 번째 이야기가 끝이 났다.
<이중 배상>은 필름느와르치고는 상당히 귀엽고 즐거운 작품이다. 어둠의 기운이 서린 느와르를 두고 무슨 얘기냐고 할 수 있겠으나 앞서 거론한 대로 캐릭터들의 모습이 악인(네프와 필리스)이라고 하기엔 너무 어설프기 그지없다. 반면에 그들을 추적하는 선인(키즈)은 너무 완벽하다. 모든 것을 갖춘 완벽한 자가 어설픈 범죄자를 쫓는 형국이다. 빌리 와일더는 느와르에서마저 희화화된 인물구도를 통해 미국사회의 신경증적 불안감을 주시한다. 앞선 <선셋 대로>와 마찬가지로 이 영화는 꼭 보기를 권한다. 다음 이야기는 <잃어버린 주말>에 대한 것이다. 알콜중독자의 주말을 그린 이 영화에서 우리는 (아마도)영화 사상 최악의 알콜중독자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계획대로라면 빌리 와일더 시리즈는 금년 안에 끝을 맺어야 하는데, 아마도 2007년 1월까지 이어질 것 같고, 추가로 <제 17 포로수용소>까지 넣어서 마무리 지을 생각이다.
시작하면서
빌리 와일더의 네 번째 연출작이며 1944년 아카데미 6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된 <이중 배상>은 1920년대 미국에서 벌어진 실제 사건에 기초한 제임스 M 케인의 소설을 레이먼드 챈들러와의 공동시나리오 작업을 통해 완성된 작품이다. 이 사건을 간단하게 살펴보면, 러스 스나이더 Ruth Snyder라는 부인이 보험금을 노리고 자신의 정부 주드 그레이 Judd Gray와 합세하여 남편 알버트 스나이더 Albert Snyder를 살해하고 결국에는 사형당한 사건이었다. 요컨대 <이중 배상>은 필름느와르 계열의 작품이고 빌리 와일더가 만들었으며 ‘거짓말 서스펜스’를 차용해 진행됨과 동시에 느와르 최초로 팜므파탈이 등장하는 영화이기도 하다.(거짓말 서스펜스에 대한 설명은 뒤에서 할 것이다.) 영화의 제목인 <이중 배상_ Double Indemnity>의 뜻은 보험사에 사고보험을 들었을 경우 계약서에 기록된 특수 조항에 해당되는 사고가 나면 배상금의 2배까지 받을 수 있음을 의미하는데, 보험업계에서는 이중배상이라는 말 대신 배액지급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영화는 월터 네프라는 사내가 총을 맞은 채 자신의 사무실에 들어와 사건의 전모를 밝히고 살인자백을 하는 독특한 시퀀스로 시작된다. 이 시점으로부터 2개월 여전, 평범하고 흠 없는 서른다섯 살의 보험세일즈맨 네프는 디드릭슨이라는 기업가의 집을 찾게 된다. 두 대의 자동차 보험의 만기 연장을 위해 방문한 그를 맞이한 사람은 디드릭슨의 부인 필리스인데, 간호사였던 그녀는 디드릭슨의 전처를 간호하던 중 부인이 죽자 그와 결혼한 여자이다. 일에 쫓겨 자신에게 관심조차 두지 않는 남편을 원망하던 아내가 ‘남편이 없는 세상’을 꿈꾼다는 설정은 비단 느와르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지만, 보다 이상적인 남자도 취하고 돈도 얻고자하는 요부의 면모가 필리스에 얹혀 지면서 사건은 스릴러의 성격을 띠게 된다. 보험세일즈맨이라는 적합한 직업을 가진 사내가 나타나 자신에게 관심을 보일 때, 그를 이용한 보험범죄가 벌어지리라는 것은 쉽게 예상할 수 있을 터이다. 따라서 영화는 네프가 필리스의 꼬임에 빠져 범죄에 가담하고 임무를 완수하는 상황까지를 전반으로 하고, 이후 조여 오는 탐문조사망에 초조해하는 시간 동안 또 다른 음모의 실체를 알아가는 내용을 후반으로 진행된다.
빌리 와일더의 서사방식
필름느와르의 특정한 서사구조로서 플래시백과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의 사용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이중 배상>은 네프의 자기고백으로 시작하면서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기법을 통해 주인공의 심리상태는 물론이고 그간 겪어온 심적 갈등까지 고스란히 표현해내고 있다. 마찬가지로 오손 웰즈의 <상하이에서 온 여인 (1947)>이나 <선셋 대로 (1950)>의 경우 같은 양식을 취하고 있는 대표적 사례이다. 남자 주인공은 자신이 겪은 사건과 자신이 만난 팜므 파탈에 대해서 기억을 떠올리고 그 때 느꼈던 감정이나 사건의 추이를 1인칭 시점으로 내레이션 하는 데, 이것은 특정한 주인공에게 동일시의 관점을 부여하고 그가 겪은 사건의 충격과 심정의 변화를 한층 더 강하게 표현하는 양식으로 더 없이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레이먼드 챈들러는 빈정거리며 작가의 사명을 말한다. “이곳은 유쾌한 세계는 아니다. 하지만 당신이 살고 있는 곳이다. 어쩌겠는가. 작가라면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라고. 느와르는 이런 현실에서 느끼는 등장인물들의 불신과 혐오감을 스타일로 승화시킨다. 느와르의 조명과 화면은 폐쇄공포증과 편집증을 부추기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시각 스타일로 귀착되는 필름느와르는 유럽 표현주의에 상당한 빚을 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필름느와르가 이야기 틀을 하드보일드 추리소설에서 빌려왔다면 시각 스타일은 유럽 표현주의에 젖줄을 대고 있다.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독일인과 오스트리아인들은 1920년대 독일 표현주의의 유산을 가져왔다. 광포한 역사에 짓눌린 음산한 세계관과 더불어. 영화사가 들은 1929년 <일요일의 사람들>이란 초저예산 영화를 찍기 위해 베를린에 모였던 영화인들이 훗날 필름느와르의 주춧돌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프리츠 랑을 비롯한 유럽출신 감독들은 표현주의적 화면과 극단적인 어둠을 사용하는 조명기법을 할리우드에 도입했다. 그러나 느와르에 우아하고 어두운 눈의 날개를 달아준 이는 촬영감독 존 앨튼이었다. 그는 많은 중요한 필름느와르의 촬영을 맡았는데 혁신적인 조명기술로 할리우드에서 평판이 자자했다. "다른 촬영감독들은 노출에 맞춰 조명을 비춘다. 그러나 난 분위기를 위해 빛을 비춘다"고 앨튼은 말했다. 당시 그를 고용한 MGM의 제작자가 회고하는 바에 따르면 "앨튼은 마룻바닥에 비치는 빛만으로도 촬영을 할 수 있었고 시간을 많이 절약했다. 그래서 그는 다른 촬영감독에게 인기가 없는 사람이었다." 이렇듯 1930년대 초 이래 유럽에서 전쟁을 피해 피신한 영화인들이 미국 영화계에 그들의 기술적인 전문 지식을 이식하기 시작하면서 미국 고유의 필름느와르는 이 해부터 싹트기 시작했으며, 그런 면에서 아카데미가 빌리 와일더의 신랄한 영화 <이중 배상>에 주목한 것은 의미가 깊다.
인물을 그려내는 방식에서의 와일더식 느와르의 특징은 (여성캐릭터를 조명하는 방식과 그림자와 연기를 통해 음울하고 비정한 공간을 만들어내는 식의 느와르적 특질에서 한 치 벗어남이 없지만) 대상 인물들을 희화적으로 그려내고는 그들에게 적절한 낭만주의적 기질을 부여함으로써 파렴치한에서 멀찌감치 물러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다는 데 있다. 예를 들어 네프와 필리스가 만나 범죄를 모의하는 슈퍼마켓 장면에서 볼 수 있듯이 이들의 행동이란 유치하고 단순하기 짝이 없는데, 한 발짝의 거리차로 상대방의 시선과 귀를 피할 수 있다고 믿었던 그들의 단순함은 가장 가까운 공간에 자리한 키즈에 의해 폭로되기 이른다. 또한 감독은 예고 없는 키즈의 방문을 받고 당황하는 네프와 같은 시간 그의 집을 방문하지만 문 뒤에 숨어 두 남자의 대화를 듣는 필리스에게 죄의식을 선사함과 동시에 범죄자와 사건담당자를 한 공간에 모아놓음으로써 긴장감을 불러일으키고 사건의 수준을(그들이 그토록 신중하고 힘들게 결행했던) 가볍게 전락시켜 버리는 영민함을 발휘하기도 한다.
다만 <이중 배상>에서 주목할 것은 대사의 힘을 극대화함으로써 배우들의 연기에 날개를 달아준 각본의 출중함이다. 여기에 영화성격에 따라 인물과 배우, 배우와 대사, 대사와 인물 간을 적절하게 조절하면서 최상의 조합을 통해 최고의 완성도를 이뤄낸 빌리 와일더의 뛰어난 연출력 또한 칭찬해야 할 것이다. 이를테면 <이중 배상>의 주요배우들인 프레드 맥머레이와 바바라 스탠윅, 에드워드 G. 로빈슨 등의 연기가 나무랄 데 없음에도 그들의 모습만으로는 캐릭터와의 유사점을 찾을 수 없는 데 반해 그들이 입을 열어 대사를 시작하면 바로 네프가 되고 필리스가 되며 키즈가 되는 식이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사랑에 노예가 되어 범죄에 가담하는 결코 매력적인 신사의 모습과 거리가 먼 맥머레이와 우스꽝스런 가발을 뒤집어쓰고 팜므 파탈을 연기하지만 오히려 가정부역할에 더 어울릴 법한 바바라 스탠윅은 물론이고 <리틀 시저>에서 열연을 펼쳤음에도 왠지 예민하고 냉철한 보험회사 배상담당보다는 코미디언에 어울릴 것 같은 왜소한 체구의 에드워드 G. 로빈슨을 캐스팅하여 레이먼드 챈들러의 각본을 통해 새로운 인물들로 거듭나게 만든 빌리 와일더의 능력은 가히 일품이라 하겠다. 반면 네프와 필리스의 만남과 사건의 진행을 보면 다소 억지스럽고 개연성이 떨어지는 부분도 눈에 띠는데, 이를테면 첫 방문에서 두 남녀가 교감하고 다음 번 만남에서 살인공모에 동의하는 동안 한 눈에 반한 연인들의 모습은 찾아 볼 수 없으며, 동업자들의 우정확인 이상을 넘어서지 못하는 그들의 키스는 건조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중 배상>의 완성도에 이의를 제기하는 이는 드물다. 이는 유럽에서 장인들과 작업을 하는 동안 빌리 와일더가 영화적으로는 느와르의 특질을 정확하게 꿰고 있었으며 미국역사의 한계성 또한 충분히 이해했다는 것으로 설명될 수 있다. 느와르는 무엇보다 스타일이기 때문에 사회적 갈등을 논리가 아니라 시각 스타일로 풀어냈고 이를 통해서 느와르는 사회학적 문제들을 미학적 해답으로 창조해낼 수 있었던 것이다.
팜므 파탈에 대한 오해 또는 진실
<이중 배상>이 제기하는 또 다른 문제는 팜므 파탈 캐릭터를 통한 당대 여성들의 사회적 위치 확인이다. 제2차 세계대전당시 많은 남자들은 전쟁터로 갔고, 숱한 공장과 회사들은 여성들로 채워졌다. 전쟁이 끝난 후 돌아온 남자들에게 돌아갈 일자리는 어디에도 없었던 것이다. 이는 1차 대전 이후 돌아온 영웅들이 갱이 되거나 무위도식 하며 사회의 골칫거리로 전락한 예와 같으며 월남전 이후 고향으로 돌아온 병사들의 무기력과 사회의 냉담함 속에 이중 상처를 겪는 것과 동일하다. (라울 월시의 <포효하는 20년대>나 윌리엄 와일러의 <우리 생애 최고의 해> 올리버 스톤의 <7월 4일 생>을 보라) 즉, 전쟁에서 승리하여 금의환향한 그들에게 남겨진 것이라곤 빛바랜 훈장뿐이었다. 일터는 여성으로 대치되어 남성의 위치를 위협하면서 가부장제에 역행하는 사회분위기를 자아내었다. 따라서 위협적인 여성으로 그려지는 팜므 파탈은 그런 시대 남성들의 불안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많은 필름 느와르에서 그러하듯이 정말로 위험한 팜므 파탈은 끝내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것, 이를 통해 남성들의 가부장적 권위를 회복시키려는 의도가 느와르에서 팜므 파탈의 또 다른 역할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중 배상>에서 빌리 와일더가 그려낸 필리스를 팜므 파탈로 규정하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어 보일 수 도 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나는 이 점에 주목하려고 한다.
선형구조를 가진 범죄서사를 보면 사건의 발단 요인이 있고 사건 당사자가 추구하는 목적이 있기 마련이다. <이중 배상>에서 필리스의 목적은 남편을 죽여 자유를 얻고 보험금도 받아내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차라리 목숨을 끊는 게 나을 만큼 숨 막히는 공간과 남편’이 그녀를 추동한 원인이 될 것이다. 언뜻 보면 이해 가능해 보이지만 사실은 전적으로 필리스의 진술에 의존한, 네프의 녹음 내용일 뿐이다. 반면 네프는 매력적인 여인과 멋진 삶을 시작할 수 있다는 목적을 가졌으나 그가 필리스의 계획에 동조하게 되는 결정적 원인은 어디에서 나타나고 있지 않다. 쉽게 말해서 필리스의 환경이 비교적 자세히 설명되고 있는데 반해서 네프는 그저 문제없는 보험세일즈맨으로 나올 뿐이라는 점이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은 고치기 힘든 법이고 불치병이라는 단어로 통칭되기 마련이다. 네프는 원인 없는 목적에 사로잡혀 범죄를 저지르지만 사실 그는 필리스의 목적에 이용당함으로써 원인을 공유하는 처지에 놓이는 것이다. 따라서 오로지 그녀의 치명적 매력과 유혹 때문에 네프가 가담했다는 논리에 근거하여 비평가들은 그녀를 팜므 파탈로 규정해 버렸다. 하지만 그들의 논리에 순순히 따르는 것이 옳은 일인지 생각해 볼일이다.
「팜므 파탈」은 단어 그대로 해석하자면 '치명적 여자'를 뜻한다. 남성을 계획적 정략적으로 이용하여, 파멸로 이끌거나 남자의 인생 또는 나아가 국가의 존망까지도 위험하게 만드는 여자를 통칭하는 말이다. 때론 그 대상이 인류 전체를 향하기도 하는데 대표적 예가 원죄를 만들어낸 '이브' 라고 주장 하는 이도 있다. 다만 이들의 문제에 있어 남성의 책임은 어떻게 해결되어야 하는 것인가라는 점인데, 역사의 사실을 냉정히 살펴보면 남성중심의 역사에서 실제로 여자의 역할은 미미하기 짝이 없었다. 이는 고대국가나 21세기를 막론하고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무엇보다 남성사적 역사기술의 형태에 비추어 볼 때, 이들 팜므 파탈은 역사의 희생양이나, 남성이 맡아야 할 책임의 전가 대상으로 추락한 흔적이 곳곳에 보인다는 점이다. <이중 배상>에서 네프와 필리스가 처음 만나는 장면으로 돌아가자.
디드릭슨의 집을 방문한 네프가 처음 본 것은 선탠가운을 걸친 채 2층 발코니에 서 있던 필리스였고, 그녀가 계단을 내려오는 동안 네프의 시선은 줄곧 그녀의 발목을 주시하고 있다. 기어이 “정말 발찌가 아름답다”는 작업성 멘트를 시작으로 첫 대면에서부터 노골적인 시선과 추파를 던지며 상대의 관심을 불러일으킨 것은 네프 쪽이었다. 첫 대면에서 필리스의 매력에 사로잡힌 네프가 집을 떠나면서 그녀와 나누는 대화를 살펴보자.
(필리스) “남편을 만나고 싶어 하지 않았나요?”
(네 프) “처음에는 그랬는데, 이제는 생각이 좀 바뀌었죠”
(필리스) “이곳에는 시속 70킬로미터의 속도제한이 있어요”
(네 프) “경관님 제가 얼마로 달리고 있나요?”
(필리스) “140킬로 달리고 있어요”
(네 프) “그럼 어서 위반딱지를 떼어주세요?”
(필리스) “이번엔 경고만 하죠”
(네 프) “싫다면요?”
(필리스) “그럼 손을 비틀어야죠.”
(네 프) “울면서 어깨에 기대면요”
(필리스) “남편 어깨에 기대는 게 어때요.”
두 사람의 대화에서 알 수 있듯이 끈적끈적하고 음기 가득한 대화를 통해 그들은 서로의 속내를 감추거나 엿보이면서 다음을 기약하고 있다. 그리고 예상대로 필리스가 네프의 집을 방문하면서 그녀의 계획은 현실로 드러나게 된다. 여기까지만 본다면 필리스의 의도대로 네프가 음모에 걸려든 형국이다. 하지만 첫 만남에서 필리스가 사고보험에 대해 물어보았음에도 “그때는 전혀 눈치 채지 못 했다” 는 네프의 진술을 믿는다 하더라도 그는 필리스의 유혹이 비집고 들어갈 여지를 처음부터 만들어놓고 있음이 발견된다. 즉 여성의 유혹이 시작되기 이전에 남성의 시선이 움직이며 그녀들을 바라보는 남자의 시각과 심리변화가 뚜렷하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영화는 남성에게 일어난 결과에만 포커스를 맞추고 여주인공을 팜므 파탈로 규정짓는다. 이러한 시도는 영화 내내 그녀의 움직임을 따라다니는 그림자와 그녀 위에 비추인 과도한 조명과 번들거리는 립스틱 위에 깔린 악의 기운을 카메라기법으로 재현되고 있다. 네프는 자신의 주장대로 흠 없이 잘 나가는 보험세일즈맨이었지만, 욕망에 사로잡힌 한 순간의 판단미스로 자신과 다른 이의 인생을 파멸로 이끈다. 그러므로 필리스가 팜므 파탈로 영화 속 사건의 단초를 제공한 여인이라면 그녀의 계획을 구체화하고 현실화시킨 네프의 행위는 오히려 범죄의 주체로 보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내내 그의 독백은 자신의 범죄행위를 뉘우친 다기 보다는 사건의 초점을 필리스에 맞추면서 자기변호에 급급해하는 내용을 담고 있고, 영화 전반을 관통하는 기운 역시 필리스의 악녀성에 희생당한 남자의 이야기를 느와르의 외피로 입혀 서둘려 마감해 버리는데 일조하고 있다. 이렇듯 실패한 역사의 책임을 나약한 여성에게 전가하려는 남자들의 무책임은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남성들이 내제된 불온한 욕망과, 왜곡된 성적욕구를 제어 시키지 않는 한, 책임의 일부를 여자에게 떠넘기려는 시도가 계속 되는 한, 누구라도 자기만의 팜므 파탈을 스스로 만들게 될 것이라는 것, 어쩌면 <이중 배상>이 제시하는 또 다른 훈계일 수 도 있다.
거짓말 서스펜스
필리스의 사주로 디드릭슨을 살해하는데 성공한 네프는 예기치 않은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사건 당일 증인까지 염두에 둔 치밀한 알리바이를 만드는 데 성공하지만, 외부로는 디드릭슨의 딸 롤라에 대한 연민과 그녀의 입을 통해 들은 필리스의 요부기질을 확인하며 혼란에 빠지고, 내부로부터 조여 오는 키즈의 사건추리력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목적한 바를 달성한 후 아름다운 여인과의 위험천만한 재회를 꿈꾸는 네프에게 철저한 프로정신과 탁월한 직감을 지닌 키즈는 그들이 넘어야 할 마지막 관문인 셈이다. 이때부터 영화는 네프와 그의 상사이자 배상청구 심사담당인 키즈 사이에서 벌어지는 보험금청구를 둘러싼 심리적 충돌을 통해 새로운 재미를 불러일으키게 된다. 이를테면 <이중 배상>의 후반부는 ‘거짓말 서스펜스’를 기제로 사용하면서 긴장감의 극대화를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거짓말 서스펜스란 무엇인가. 쉬운 예로 설명을 하자.
학창시절 용돈을 벌충하는 방법으로 참고서나 급식비 등의 금액을 올리거나 아예 없는 용도를 만들어내어 부모님께 돈을 타낸 기억을 떠올리면 간단해 진다. 일단 목적하는 것을 손에 쥐긴 했으나 문제는 이때부터 벌어지는데, 혹시라도 참고서를 보자고 하지는 않을까. 영수증을 가져오라고 하지는 않을까. 혹은 부모님 사이의 대화에서 참고서나 급식비와 관련한 단어만 나와도 가슴 두근거림과 안절부절 못하던 그 심정. 바로 거짓말을 한 후 이것이 들통 날까봐 온통 촉수를 곤두세우고 예의주시하며 가슴을 쓸어내리는 숨 막히는 긴장감을 일컬어 ‘거짓말 서스펜스’라고 칭한다. 하물며 매일 얼굴을 맞대야 하는 사이임에랴! 이 영화를 끌어가는 것은 보험회사 직원과 요부 사이에서 벌어지는 애정과 배신, 탐욕의 서사이지만 재미와 긴장감을 극대화시키면서 빼어난 느와르로 완성시켜주는 것은 거짓말 서스펜스에서 비롯된다. 그렇다면 <이중 배상>에서는 어떻게 거짓말 서스펜스를 차용하는가.
배상심사 담당자인 키즈 입장에서 보면 디드릭슨의 죽음은 기차에서 사고를 당했을 경우 보험금의 2배를 받게 되는 이중배상과 맞물린 중대 사안이다. 하지만 사망자가 사고사가 아닌 것으로 볼 수 없는 어떤 단서도 찾지 못하는 가운데서 키즈의 예리함은 빛을 발하게 된다. “이 큰 방을 차지하고 있다고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보험사 사장이 유추해낸 것이 고작 자살로 간주하는데 반해 키즈의 탁월한 능력은 이때부터 발휘된다. 사람의 심리를 쥐락펴락하면서 네프를 긴장하게 만드는 그는, 보험금지급 거부를 위해 자살을 확신하는 사장에게 “시속 16마일로 달리는 기차에서 자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니 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내용의 소신발언으로 “키즈, 그때는 정말로 당신을 안아주고 싶었다”고 토로할 만큼 네프의 마음을 안도시키더니, 네프의 집에 찾아와서는 “우리가 놓친 것이 있었다. 디드릭슨이 다리를 다쳤는데, 왜 그때 보험금 청구를 하지 않았을까. 아마도 자신이 보험에 든 사실을 몰랐을 것”이라는 기막힌 추측으로 부인인 필리스 외에도 공범이 한 명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전달한다. 그러니 애써 긴장을 감추는 네프의 표정과 달리 신명나게 살인자의 머릿속을 파헤치는 키즈의 달변을 듣다 보면, 책상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매일 얼굴을 마주해야 하는 상사의 서슬 퍼런 추리력 앞에 선 네프의 가슴 떨림이 어찌 와 닿지 않겠는가. 비록 이미 사건의 전모를 알고 있는 관객일지라도.

느와르에 스며든 기이한 낭만
<이중 배상>에는 필름 누아르의 어두운 그림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기이한 낭만도 스며들어 있다. 디드릭슨의 집을 처음으로 방문한 네프가 필리스로부터 사고보험에 대한 질문을 받은 후 내뱉던 “살인에서도 때로는 허니 서클 향기가 난다는 걸 내가 어떻게 알았겠는가?”라는 자조 섞인 대사가 그러하다. 게다가 변함없을 것이라 여겼던 두 사람의 애정이 무너지는 것은 네프가 디드릭슨의 전처 딸인 롤라를 만나게 되면서 부터인데, 아버지를 잃은 가련한 숙녀에게 연민을 느낌과 동시에 그녀에게 마음을 빼앗기는 네프는 비정함과 거리가 먼 로맨티스트의 풍모를 보여주기도 한다. 반면 철두철미한 키즈의 경우 보험범죄를 저지른 사람의 심리를 파악하고 한 치의 오류도 범하지 않는 인물로 그려지지만 정작 가장 가까운 사람인 네프에게 마음을 들키고 자신의 믿음을 이용당하는 순진함마저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영화가 지닌 낭만의 정점은 뜻밖의 장면에서 발견 된다. 범죄사실을 녹음하던 자신을 오랫동안 지켜본 키즈의 등장으로 다시 한 번 실패한 네프가 그의 호감을 이용해 도주에 필요한 네 시간을 얻으려는 순간, “우린 그(책상 하나 사이)보다 더 가까웠”다는 키즈의 말에 화답하듯 네프의 마지막 일성(“나도 당신을 좋아해요”)의 야릇한 뉘앙스를 빌어 범죄자의 파국마저도 남자들의 우정을 넘어선 애틋함으로 덮어버리는 방식이 그러하다. 그리하여 국경을 넘는 데 필요한 네 시간을 달라는 네프를 향해 “자네는 거기까지 가지 못 할 걸세. 엘리베이터까지도 갈 수 없을”거라 말하던 키즈의 안타까운 눈빛과 더불어 영화는 마침표를 찍는다.
나가면서
미국의 근간을 이루는 이념은 두 말 할 나위 없이 개척정신과 청교도정신이다. 할리우드가 탄생한 이래 미국 영화는 이 두 개의 정신을 고수하고 유지하면서 발전해왔다. 특히 양차 대전 기간 동안 할리우드 영화는 자국민들에겐 애국심의 고취를 통해 보수적 이데올로기를 설파했고 유럽 각국에 터전을 세우면서 미국적 가치관과 미국적 삶의 환상을 심어놓기 이른다. 미국의 질서는 곧 세계의 질서를 의미하기도 했다. 이러한 질서를 위반하지만 않는다면, 합리적 생활양식에 의거하여 노력하기만 하면 누구나 그 질서 내에서 성공을 보장받았다. 아메리칸 드림의 최대 수혜자는 갱들과 유럽에서 온 이민자들이었다. 달리 말하면 양차 대전을 피해 미국으로 건너온 유럽감독들에 의해 미국의 필름느와르가 형성된 반면 이들이 만들어낸 영화로 인해 미국적 가치관이 전복 위기를 맞이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다.
느와르의 세계는 미국의 개척정신이 뒤집힌 세계이다. 갱은 저명인사가 돼 거들먹거리고 사립탐정은 역겨워서 경찰을 때려 친 사람이며 젊은 여성은 속는 것이 지겨워서 남들을 속이려고 든다. <이중 배상>의 주인공 네프는 외적으로는 문제가 없는 사내로 보이지만, 한 순간 사랑에 눈이 멀어 유혹의 덫을 피하지 못하는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 배상청구업무를 권하는 키즈의 요청을 거절함으로써 보다 나은 미래를 포기하거니와 금욕과 절제, 신앙이 덕목인 청교도 정신을 철저히 위배함으로써 자신을 파멸로 이끌고 있다. 이에 반해 키즈는 결혼도 미룬 채 일중독에 빠진 철두철미한 근대자본주의자의 상징적 인물이다. 주머니에 불이 날까봐 성냥을 갖고 다니지 않는 신경증적 성향도 그렇지만 마지막까지 이성적 판단으로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면서 네프를 병원과 경찰에 인계하려 장면에서 그의 특성은 극대화 된다. 키즈가 미국의 정신을 고스란히 이어가는 인물이라면 네프는 이를 뒤집는 사람이라 할 수 있는데, 이 둘 사이에 끼어든 필리스는 양자 모두에게 위협적 존재인 셈이다. 남편의 전처를 살해한 혐의를 안고 있는 그녀가 또다시 남편의 살인을 계획하고 사주함으로써, 가정의 몰락을 재촉하고 있는 것이다. 전쟁의 막바지 미국의 모든 산업은 군수제품의 생산과 보급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자동차 유류의 배급제 시행에서 알 수 있듯이 전쟁을 치루는 데 있어 기름의 중요성은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때문에 네프가 죽인 필리스의 남편 디드릭슨이 정유공장의 사장이었다는 점은 다분히 상징적이다. 요컨대 미국의 정신이 결여된 나약한 한 남자가 가정을 해체하고 가부장적 권위에 도전하려는 요부의 꼬임에 빠져 사적이익을 도모하는, 미국의 보수적 이데올로기로는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행위에 대하여, 미국적 가치관을 지켜내려는 할리우드 정신이 빚어낸 영화가 <이중 배상>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럼에도 빌리 와일더는 네프를 죽음으로까지 내몰지 않는다. 왜 그랬을까?

이로써 빌리 와일더 시리즈의 두 번째 이야기가 끝이 났다.
<이중 배상>은 필름느와르치고는 상당히 귀엽고 즐거운 작품이다. 어둠의 기운이 서린 느와르를 두고 무슨 얘기냐고 할 수 있겠으나 앞서 거론한 대로 캐릭터들의 모습이 악인(네프와 필리스)이라고 하기엔 너무 어설프기 그지없다. 반면에 그들을 추적하는 선인(키즈)은 너무 완벽하다. 모든 것을 갖춘 완벽한 자가 어설픈 범죄자를 쫓는 형국이다. 빌리 와일더는 느와르에서마저 희화화된 인물구도를 통해 미국사회의 신경증적 불안감을 주시한다. 앞선 <선셋 대로>와 마찬가지로 이 영화는 꼭 보기를 권한다. 다음 이야기는 <잃어버린 주말>에 대한 것이다. 알콜중독자의 주말을 그린 이 영화에서 우리는 (아마도)영화 사상 최악의 알콜중독자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계획대로라면 빌리 와일더 시리즈는 금년 안에 끝을 맺어야 하는데, 아마도 2007년 1월까지 이어질 것 같고, 추가로 <제 17 포로수용소>까지 넣어서 마무리 지을 생각이다.
- 2006.12.07 백건영(영화평론가)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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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 2007/10/09 10:24 | 네오이마주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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