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0월 09일
빌리 와일더와 할리우드 (6) [하오의 연정]
1950년대 할리우드의 고민은 TV, 스포츠나 볼링, 모터보트 타기, 하이파이 전축세트 따위로 부터 어떻게 대중의 여가 시간을 빼앗느냐 라는 것이었다. 관객을 끌기 위한 50년대 할리우드의 노력은 다양한 장르의 진화를 낳았고 이런 배경에서 탄생한 장르가 가족 멜로드라마이다. 기존의 멜로드라마에 싫증이 난 관객들, 특히 그 중에서도 남성 관객들을 붙잡아 두는 데 어느 정도 성공한 가족 멜로드라마는 완고한 부친, 반항하는 자녀, 이런 와중에 닥쳐오는 가정 질서의 붕괴 등이 단골 줄거리였다. 특히 직장에서 억압받고 집에서는 자녀와의 갈등으로 고뇌하는 처량한 중년 남자들의 이야기는 많은 남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해 가족 멜로드라마는 흔히 '남성용 최루영화'(Male Weepie Movie)라는 애칭이 붙기도 했다. 또한 할리우드 스튜디오 시스템의 쇠퇴가 1950~60년대에 걸쳐 지속되는 동안, 작가주의 영화 이론이 대두됨과 동시에 고다르나 펠리니 같은 유럽 영화감독에 대한 대중의 관심 또한 고조되었다. 영화작가라는 개념이 꽤나 오래 된 개념이기는 하지만, 영화이론과 비평, 때로는 영화창작을 떠받치는 주요 구성 개념이 된 것은 2차 대전 이후에 이르러서였다. 프랑스에서 작가주의는 기존 체제의 경직된 제작 질서 및 상투적인 내러티브 방식에 대한 누벨바그 감독들의 공격과 밀접히 결합되어 있다. 제작자에 대해 감독의 권리를 수호하려는 누벨바그 감독들은 자신들의 지위를 쟁취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와 맞물려 1962년에 이르기까지 미국의 많은 영화 기술자와 배우, 그리고 감독들은 유럽으로 눈을 돌렸고, 특히 로마는 테베 강변의 할리우드라 불릴 정도였는데, 빌리 와일더의 57년 제작한 두 작품([하오의 연정] [저것이 파리의 등불이다_ The Spirit of St. Louis]) 모두 파리 로케이션으로 이뤄졌다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하오의 연정
클로드 아리아넷의 소설 ‘알리아느’를 영화로 만든 빌리 와일더의 1957년 작 [하오의 연정_ Love In The Afternoon]은 자신의 스승 에른스트 루비치의 작법과 여러 면에서 유사성을 지닌 작품이다. 1933년 나치를 피해 유럽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와일더는 자신이 꿈에 그리던 영웅이자 당대의 코미디감독 에른스트 루비치의 각본을 쓰게 되는데, 이때 쓴 각본 중 하나가 [푸른 수염의 8번째 아내_ Bluebeard’s Eighth Wife](1938)이며, 따라서 [하오의 연정]의 기본적 설정이 [푸른 수염의 8번째 아내]와 같다는 것은 이런 연유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흙먼지 날리는 황야의 총잡이는 정유, 건설 재벌이 되어 흰색 연미복에 보우타이를 매고는 프랑스 파리의 한 복판에서 젊은 유부녀와 밀회를 즐기고, 같은 시간 방돔 전망대에서는 또 다른 사내의 카메라 셔터가 쉼 없이 터지고 있다. 어디를 가나 사랑으로 가득한 도시라는 것을 입증이라도 하듯 입맞춤에 여념이 없는 남녀노소 연인들의 모습을 비추면서 빌리 와일더의 열네 번째 연출작 [하오의 연정]은 그렇게 시작한다.
영화의 스토리는 지극히 간단하다. 파리 출장 중인 플래너건은 (자신의 남편이 런던출장 중이라고 믿는)유부녀와 리츠 호텔 스위트룸 14호에서 밀회를 나누고 있으며, 샤바스를 찾아온 바람난 아내의 남편은 플래너건을 죽이려는 결심을 굳힌다. 부정한 행위에 대한 불법적 응징이 현실이 되려는 순간, 아리안느는 두 사람이 밀회 장소인 호텔방에 난입하고는 정부역할을 자처함으로써 그를 구해낸다. 결과적으로 남편의 사랑을 확인함으로써 유부녀는 가정으로 돌아가고 둘 사이의 애정을 회복시킨 공로는 아리안느에게 섬광 같은 사랑으로 보상주어 진다. 이렇듯 영화는 불륜사건 전문탐정인 클로드 샤바스(모리스 슈발리에 분)의 딸 아리안느(오드리 햅번 분)와 미국의 백만장자 바람둥이 플래너건(게리 쿠퍼 분) 사이에서 벌어지는 애정의 줄다리기를 와일더 특유의 터치를 가미하여 그려내고 있다. 여기서 플래너건이 아리안느를 유혹하는 장면의 대사를 잠시 살펴보자.
플래너건 : 파리에서의 마지막 밤을 혼자 보내게 하진 않겠죠?
아리아느 : 총을 갖고 왔던 분이 아내를 소개시켜 준다고 했잖아요.
플래너건 : 그 여자보다는 당신이 훨씬 매력적이에요.
아리아느 : 그럼 스톡홀름에 있는 쌍둥이 자매한테 가세요!
플래너건 : 그 둘을 합친 것보다 당신이 더 매력적이에요.
아리안느 : 말이 별로 없는 편이시라더니...
플래너건 : 8시 어때요?
아리안느 : 안돼요.
플래너건 : 9시는요?
아리안느 : 안돼요. 너무 늦어요.
플래너건 : 5시는요? 4시는?
아리안느 : 오후에요? 일은 언제 하시려고요?
플래너건 : 바쁘지 않을 때 하죠. 올 수 있죠?
아리안느 : 당신은 절대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들었어요.
플래너건 : 그럼 둘 다 노력합시다. 당신은 4시에 여기 오기 위해,
난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아리안느 : 안녕히 계세요. 플래너건씨.
플래너건 : 잘 가요. 말라깽이 아가씨.

사랑은 이렇게 소리 없이 찾아온다고 했던가. 호기심에서 시작된 인연은 숙명적으로 서로를 옭아매기 시작하는데, 나이 많은 남자와 젊은 여인, 황야의 보안관 출신과 로마를 활보하던 공주, 무거운 첼로 케이스를 직접 들어야 하는 평범한 여인과 손가락 하나로 모든 것을 움직일 수 있는 백만장자 사이에서 대극적 환경을 유머러스하게 꾸며가는 와일더의 미장센은 무려 20여 차례나 등장하는 집시밴드와 함께 절정의 힘을 발휘한다. 장난스럽지만 하이든 첼로 협주곡처럼 우아하게 또는 와인과 캐비어로 장식된 식탁처럼 화려하지만 집시밴드의 ‘매혹의 왈츠’처럼 소박하고 매혹적인 미장센은 상대적으로 빈약한 공간과 이야기의 단조로움을 매워주는 기제로 충분히 활용됨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와일더가 즐겨 사용했던 모티브 즉, 지근거리에 있는 인물들로부터 사건이 시작되고 결말지어지는 작법에서 어떠한 패턴을 읽었다면 이 작품역시 예외가 아님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남성편력을 자랑하면서 희대의 바람둥이 플래너건을 희롱하고 초조하게 만든 여대생이 한 때 그의 뒤를 캐면서 방대한 자료를 수집했던 샤바스의 딸이었다는 것과, 그녀의 뒷조사를 바로! 샤바스가 맡는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이렇듯 너무 가까운 곳에 있기에 의심할 바 없이 토로하고 제공된 정보와 단서를 통해 시작되는 이야기들이 불러일으키는 가벼운 페이소스는 드라마의 완성도에 일조하거니와 메시지 전달과정의 간소화를 이뤄내고 있다. 또한 특별한 긴장감 없는 이 드라마에서 웃음을 만들어내는 것은 각각의 인물들이 자신을 이루는 배경을 전복하는 상황의 아이러니를 통해서인데, 사립탐정 샤바스가 자신의 딸을 조사해야하는 상황, 희대의 바람둥이가 순진한 처녀의 장난으로 인해 속내를 열어 제치는 상황, 교향악단의 첼로연주자가 집시밴드 곡을 입에 달고 사는 상황이 그러하다.
거장의 영화라고 모두 걸작이지 않듯, 빌리 와일더의 영화라고 예외가 될 수는 없겠으나, 이야기와 인물과 공간의 상보적 관계를 이용하고 조합하는 능력을 통해 어떤 작품이라도 최소한 기본수준을 유지한다는 데서 그의 비범함은 발견된다. 달리 얘기하자면 [하오의 연정]은 그의 걸작 목록에 들어가기에는 다소 부족한 작품이지만, 오드리 햅번의 청초한 전성기를 볼 수 있다는 점과 보안관에서 중년의 신사로 탈바꿈한 게리 쿠퍼를 통해 와일더에 씌워진 루비치의 그림자를 확인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얘깃거리를 제공한다는 말이다.

영화의 마지막은 플랫폼의 이별 장면이다. 구슬 같은 눈물을 머금은 아리안느가 출발하는 열차를 뒤쫓고, 열차 승강구에 서있는 플래너건은 그런 그녀를 바라만 볼 뿐이다. 점점 속력이 붙는 열차를 바라보며 ‘기어이 헤어지는 것인가’라고 낙담하는 순간, 플래너건이 손을 뻗어 아리안느를 열차의 승강구로 끌어 올린다. 이를 지켜보고 있던 그녀의 아버지와 관객들 모두의 가슴을 쓸어내리게 만들며 영화는 감미롭게 막을 내린다. 이 영화는 사랑의 힘을 믿는 모든 이들에게 꿈을 제공하고 있지만, 그저 착하고 예쁘기 때문에 왕자와 결혼 하게 되는 신데렐라의 꿈이 아니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불현듯 찾아 올 사랑에 대한 기대와 설렘의 꿈을 주고 있다는 점에서 여느 로맨틱 코미디와 차이가 있다. “우리가 첫 촬영을 하던 날 그가 촬영장에 나타났을 때 그곳에 있던 사람들이 전부 그를 좋아하게 됐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던 와일더의 회고대로 오드리 햅번의 청순한 매력은 더 재삼 거론하는 것이 무의미 할 정도지만,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그녀의 눈물어린 자기고백은 호사가들에 의해 소위 ‘인상 깊은 플랫폼 신’으로 등재되는 데 톡톡히 일조하고 있다.
거듭 생각해도 와일더의 드라마는 어렵지 않다. 그 대상이 할리우드의 자기반영이던, 탐욕에 지배당한 인간의 욕망이던 또는 미국자본주의에 대한 신랄한 고발이던. 이는 와일더 스스로 욕망했던 스승 에른스트 루비치와는 다른 방식으로 확고한 자기세계를 펼쳐냄으로써 가능했다. 다만 50년대 중 후반 만들어낸 세 편의 영화들, 이를 테면 <사브리나> <7년 만의 외출> <하오의 연정> 등 낭만적이고 성적 함의가 가득한 작품들은 그 수법과 웃음의 방식에서 대단히 루비치적인 것이었고 와일더 스스로도 이 점을 인정한 바 있다. 에른스트 루비치의 코미디가 따스한 인간애를 바탕으로 유머러스한 세계관을 펼쳐내고 있는데 반해, 와일더는 보다 신랄한 풍자를 사용한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다만, [하오의 연정]도 다른 영화들과 마찬가지로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어김없이 드러내고 있다. 이를테면 영화 속 모든 자본의 이동이 미국의 재벌 플래너건에서 시작됨을 알 수 있는데, 바람난 아내의 조사를 의뢰한 남자가 지불하는 5만 프랑의 수임료로부터 리츠 호텔에서 벌어지는 호화로운 식사와 집시밴드의 동원이 그러하다. 또한 아리안느의 입을 통해 진술되는 남성들의 선물공세도 따지고 보면 플래너건의 조바심을 이끌어내는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영화 후반, 절망한 플래너건과 와인캐리어를 주거니 받거니 하더니 기어이 사우나까지 동행하는 집시밴드의 모습은 자본주의의를 바라보는 와일더의 세계관을 극단적으로 상징화시킨 장면에 다름 아니다.
이렇듯 와일더의 영화에서 발견되는 자본주의에 대한 신랄한 풍자와 미국에 대한 냉소는 괜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어머니와 할머니가 어디에서 죽었는지도 모른다. 오스트리아 출신 유태인들은 대부분 아우슈비츠에서 죽었기 때문에 그들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믿을 뿐이다. 루즈벨트는 그곳에서 벌어진 일에 관해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았다.”는 와일더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그와 그의 동생 윌리는 미국에서 자리를 잡았지만, 유럽에 남아 있던 그의 유태인 어머니와 할머니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죽어갔기 때문이다. 생전에 “고향에 돌아갈 생각은 없다. 미국은 내가 죽을 곳이다”라고 말하면서도 그는 침묵했던 미국을 용서하지 않았다. 골든 보이 윌리엄 홀덴은 “와일더의 마음속엔 칼날이 가득했다”고 말하기도 했을 정도이다.

다시, 와일더를 떠올리며
1906년 태어나 96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한 빌리 와일더는 아카데미에 21번 후보에 올라서 5개의 트로피를 가져갔다(감독상 2번, 각본상 3번) 최근 미국시나리오작가협회가 선정한 ‘할리우드 최고의 시나리오 101편’중에는 네 편의 와일더 영화가 있는데, 이는 우디 앨런과 프랜시스 코폴라와 동률 1위의 기록이기도 하다. 사실 그는 괴팍한 작가였다. 그는 혼자 작업하는 걸 너무나 싫어했지만, 파트너 작가에겐 언제나 불만과 욕설을 퍼붓곤 했다. 그럼에도 빌리 와일더가 파트너와 옥신각신하며 완성해낸 대사들은 그전까지는 만날 수 없었던 촌철살인과 위트의 향연이었다. 거의 모든 장르에 통달한 '드라마투르기의 제왕'이었던 그는, 마를렌 디트리히를 “쫙 빠진 다리를 가진 마더 테레사”라고, 마릴린 먼로를 “어떠한 해답도 없는 영원한 퍼즐”이라고 요약하는 촌평가이기도 했다. 또한 그는 “요즘은 영화 만들 때 시간의 80퍼센트는 비즈니스에, 나머지 20퍼센트만을 실제 제작에 사용한다.”며 할리우드를 쏘아붙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 말이 당시의 할리우드에만 국한되는 것이겠는가. 영화의 완성도보다 단기흥행을 목적으로 마케팅에 열을 올리는 한국영화 앞에 놓인 강퍅한 현실을 보면서 빌리 와일더가 생각나는 것도 이런 때문이다.
연재를 마치면서
빌리 와일더의 영화세계를 단편적으로나마 탐색하겠다며 [선셋 대로]를 쓰기 시작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끝이라니. 예정대로라면 3편으로 끝났어야 할 것을 욕심을 부려 늘려놓았고 연재의 마지막에 해당하는 [하오의 연정]을 완성했다. (애초에 생각했던 [키스 미 스투피드]와 [빅 카니발] [뜨거운 것이 좋아] [아파트 열쇠를 빌려드립니다]는 후일로 미룰 생각이다.) 지난 2개월 여간 빌리 와일더의 작품들과 만나는 동안 더 없는 공부를 할 수 있었으며 거장의 그늘이 얼마나 넓고 짙은지를 새삼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정말로! 한 없이 행복했음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앎의 미천함을 빙자하여 거장의 세계를 왜곡한 것은 아닌지 심히 근심스럽기까지 하다. 이는 그만큼 이 공간을 찾는 독자들의 수준이 높고, 다양한 층위를 구성하고 있기 때문인데, 혹시라도 오독의 소지가 있거나 필자가 미처 간파하지 못한 부분이 있으면 언제라도 조언해주시길 바랄 뿐이다. 후속 글은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의 거장 루키노 비스콘티의 작품세계를 살펴볼 생각이다.
하오의 연정
클로드 아리아넷의 소설 ‘알리아느’를 영화로 만든 빌리 와일더의 1957년 작 [하오의 연정_ Love In The Afternoon]은 자신의 스승 에른스트 루비치의 작법과 여러 면에서 유사성을 지닌 작품이다. 1933년 나치를 피해 유럽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와일더는 자신이 꿈에 그리던 영웅이자 당대의 코미디감독 에른스트 루비치의 각본을 쓰게 되는데, 이때 쓴 각본 중 하나가 [푸른 수염의 8번째 아내_ Bluebeard’s Eighth Wife](1938)이며, 따라서 [하오의 연정]의 기본적 설정이 [푸른 수염의 8번째 아내]와 같다는 것은 이런 연유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흙먼지 날리는 황야의 총잡이는 정유, 건설 재벌이 되어 흰색 연미복에 보우타이를 매고는 프랑스 파리의 한 복판에서 젊은 유부녀와 밀회를 즐기고, 같은 시간 방돔 전망대에서는 또 다른 사내의 카메라 셔터가 쉼 없이 터지고 있다. 어디를 가나 사랑으로 가득한 도시라는 것을 입증이라도 하듯 입맞춤에 여념이 없는 남녀노소 연인들의 모습을 비추면서 빌리 와일더의 열네 번째 연출작 [하오의 연정]은 그렇게 시작한다.
영화의 스토리는 지극히 간단하다. 파리 출장 중인 플래너건은 (자신의 남편이 런던출장 중이라고 믿는)유부녀와 리츠 호텔 스위트룸 14호에서 밀회를 나누고 있으며, 샤바스를 찾아온 바람난 아내의 남편은 플래너건을 죽이려는 결심을 굳힌다. 부정한 행위에 대한 불법적 응징이 현실이 되려는 순간, 아리안느는 두 사람이 밀회 장소인 호텔방에 난입하고는 정부역할을 자처함으로써 그를 구해낸다. 결과적으로 남편의 사랑을 확인함으로써 유부녀는 가정으로 돌아가고 둘 사이의 애정을 회복시킨 공로는 아리안느에게 섬광 같은 사랑으로 보상주어 진다. 이렇듯 영화는 불륜사건 전문탐정인 클로드 샤바스(모리스 슈발리에 분)의 딸 아리안느(오드리 햅번 분)와 미국의 백만장자 바람둥이 플래너건(게리 쿠퍼 분) 사이에서 벌어지는 애정의 줄다리기를 와일더 특유의 터치를 가미하여 그려내고 있다. 여기서 플래너건이 아리안느를 유혹하는 장면의 대사를 잠시 살펴보자.
플래너건 : 파리에서의 마지막 밤을 혼자 보내게 하진 않겠죠?
아리아느 : 총을 갖고 왔던 분이 아내를 소개시켜 준다고 했잖아요.
플래너건 : 그 여자보다는 당신이 훨씬 매력적이에요.
아리아느 : 그럼 스톡홀름에 있는 쌍둥이 자매한테 가세요!
플래너건 : 그 둘을 합친 것보다 당신이 더 매력적이에요.
아리안느 : 말이 별로 없는 편이시라더니...
플래너건 : 8시 어때요?
아리안느 : 안돼요.
플래너건 : 9시는요?
아리안느 : 안돼요. 너무 늦어요.
플래너건 : 5시는요? 4시는?
아리안느 : 오후에요? 일은 언제 하시려고요?
플래너건 : 바쁘지 않을 때 하죠. 올 수 있죠?
아리안느 : 당신은 절대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들었어요.
플래너건 : 그럼 둘 다 노력합시다. 당신은 4시에 여기 오기 위해,
난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아리안느 : 안녕히 계세요. 플래너건씨.
플래너건 : 잘 가요. 말라깽이 아가씨.

사랑은 이렇게 소리 없이 찾아온다고 했던가. 호기심에서 시작된 인연은 숙명적으로 서로를 옭아매기 시작하는데, 나이 많은 남자와 젊은 여인, 황야의 보안관 출신과 로마를 활보하던 공주, 무거운 첼로 케이스를 직접 들어야 하는 평범한 여인과 손가락 하나로 모든 것을 움직일 수 있는 백만장자 사이에서 대극적 환경을 유머러스하게 꾸며가는 와일더의 미장센은 무려 20여 차례나 등장하는 집시밴드와 함께 절정의 힘을 발휘한다. 장난스럽지만 하이든 첼로 협주곡처럼 우아하게 또는 와인과 캐비어로 장식된 식탁처럼 화려하지만 집시밴드의 ‘매혹의 왈츠’처럼 소박하고 매혹적인 미장센은 상대적으로 빈약한 공간과 이야기의 단조로움을 매워주는 기제로 충분히 활용됨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와일더가 즐겨 사용했던 모티브 즉, 지근거리에 있는 인물들로부터 사건이 시작되고 결말지어지는 작법에서 어떠한 패턴을 읽었다면 이 작품역시 예외가 아님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남성편력을 자랑하면서 희대의 바람둥이 플래너건을 희롱하고 초조하게 만든 여대생이 한 때 그의 뒤를 캐면서 방대한 자료를 수집했던 샤바스의 딸이었다는 것과, 그녀의 뒷조사를 바로! 샤바스가 맡는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이렇듯 너무 가까운 곳에 있기에 의심할 바 없이 토로하고 제공된 정보와 단서를 통해 시작되는 이야기들이 불러일으키는 가벼운 페이소스는 드라마의 완성도에 일조하거니와 메시지 전달과정의 간소화를 이뤄내고 있다. 또한 특별한 긴장감 없는 이 드라마에서 웃음을 만들어내는 것은 각각의 인물들이 자신을 이루는 배경을 전복하는 상황의 아이러니를 통해서인데, 사립탐정 샤바스가 자신의 딸을 조사해야하는 상황, 희대의 바람둥이가 순진한 처녀의 장난으로 인해 속내를 열어 제치는 상황, 교향악단의 첼로연주자가 집시밴드 곡을 입에 달고 사는 상황이 그러하다.
거장의 영화라고 모두 걸작이지 않듯, 빌리 와일더의 영화라고 예외가 될 수는 없겠으나, 이야기와 인물과 공간의 상보적 관계를 이용하고 조합하는 능력을 통해 어떤 작품이라도 최소한 기본수준을 유지한다는 데서 그의 비범함은 발견된다. 달리 얘기하자면 [하오의 연정]은 그의 걸작 목록에 들어가기에는 다소 부족한 작품이지만, 오드리 햅번의 청초한 전성기를 볼 수 있다는 점과 보안관에서 중년의 신사로 탈바꿈한 게리 쿠퍼를 통해 와일더에 씌워진 루비치의 그림자를 확인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얘깃거리를 제공한다는 말이다.

영화의 마지막은 플랫폼의 이별 장면이다. 구슬 같은 눈물을 머금은 아리안느가 출발하는 열차를 뒤쫓고, 열차 승강구에 서있는 플래너건은 그런 그녀를 바라만 볼 뿐이다. 점점 속력이 붙는 열차를 바라보며 ‘기어이 헤어지는 것인가’라고 낙담하는 순간, 플래너건이 손을 뻗어 아리안느를 열차의 승강구로 끌어 올린다. 이를 지켜보고 있던 그녀의 아버지와 관객들 모두의 가슴을 쓸어내리게 만들며 영화는 감미롭게 막을 내린다. 이 영화는 사랑의 힘을 믿는 모든 이들에게 꿈을 제공하고 있지만, 그저 착하고 예쁘기 때문에 왕자와 결혼 하게 되는 신데렐라의 꿈이 아니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불현듯 찾아 올 사랑에 대한 기대와 설렘의 꿈을 주고 있다는 점에서 여느 로맨틱 코미디와 차이가 있다. “우리가 첫 촬영을 하던 날 그가 촬영장에 나타났을 때 그곳에 있던 사람들이 전부 그를 좋아하게 됐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던 와일더의 회고대로 오드리 햅번의 청순한 매력은 더 재삼 거론하는 것이 무의미 할 정도지만,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그녀의 눈물어린 자기고백은 호사가들에 의해 소위 ‘인상 깊은 플랫폼 신’으로 등재되는 데 톡톡히 일조하고 있다.
거듭 생각해도 와일더의 드라마는 어렵지 않다. 그 대상이 할리우드의 자기반영이던, 탐욕에 지배당한 인간의 욕망이던 또는 미국자본주의에 대한 신랄한 고발이던. 이는 와일더 스스로 욕망했던 스승 에른스트 루비치와는 다른 방식으로 확고한 자기세계를 펼쳐냄으로써 가능했다. 다만 50년대 중 후반 만들어낸 세 편의 영화들, 이를 테면 <사브리나> <7년 만의 외출> <하오의 연정> 등 낭만적이고 성적 함의가 가득한 작품들은 그 수법과 웃음의 방식에서 대단히 루비치적인 것이었고 와일더 스스로도 이 점을 인정한 바 있다. 에른스트 루비치의 코미디가 따스한 인간애를 바탕으로 유머러스한 세계관을 펼쳐내고 있는데 반해, 와일더는 보다 신랄한 풍자를 사용한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다만, [하오의 연정]도 다른 영화들과 마찬가지로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어김없이 드러내고 있다. 이를테면 영화 속 모든 자본의 이동이 미국의 재벌 플래너건에서 시작됨을 알 수 있는데, 바람난 아내의 조사를 의뢰한 남자가 지불하는 5만 프랑의 수임료로부터 리츠 호텔에서 벌어지는 호화로운 식사와 집시밴드의 동원이 그러하다. 또한 아리안느의 입을 통해 진술되는 남성들의 선물공세도 따지고 보면 플래너건의 조바심을 이끌어내는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영화 후반, 절망한 플래너건과 와인캐리어를 주거니 받거니 하더니 기어이 사우나까지 동행하는 집시밴드의 모습은 자본주의의를 바라보는 와일더의 세계관을 극단적으로 상징화시킨 장면에 다름 아니다.
이렇듯 와일더의 영화에서 발견되는 자본주의에 대한 신랄한 풍자와 미국에 대한 냉소는 괜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어머니와 할머니가 어디에서 죽었는지도 모른다. 오스트리아 출신 유태인들은 대부분 아우슈비츠에서 죽었기 때문에 그들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믿을 뿐이다. 루즈벨트는 그곳에서 벌어진 일에 관해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았다.”는 와일더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그와 그의 동생 윌리는 미국에서 자리를 잡았지만, 유럽에 남아 있던 그의 유태인 어머니와 할머니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죽어갔기 때문이다. 생전에 “고향에 돌아갈 생각은 없다. 미국은 내가 죽을 곳이다”라고 말하면서도 그는 침묵했던 미국을 용서하지 않았다. 골든 보이 윌리엄 홀덴은 “와일더의 마음속엔 칼날이 가득했다”고 말하기도 했을 정도이다.

다시, 와일더를 떠올리며
1906년 태어나 96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한 빌리 와일더는 아카데미에 21번 후보에 올라서 5개의 트로피를 가져갔다(감독상 2번, 각본상 3번) 최근 미국시나리오작가협회가 선정한 ‘할리우드 최고의 시나리오 101편’중에는 네 편의 와일더 영화가 있는데, 이는 우디 앨런과 프랜시스 코폴라와 동률 1위의 기록이기도 하다. 사실 그는 괴팍한 작가였다. 그는 혼자 작업하는 걸 너무나 싫어했지만, 파트너 작가에겐 언제나 불만과 욕설을 퍼붓곤 했다. 그럼에도 빌리 와일더가 파트너와 옥신각신하며 완성해낸 대사들은 그전까지는 만날 수 없었던 촌철살인과 위트의 향연이었다. 거의 모든 장르에 통달한 '드라마투르기의 제왕'이었던 그는, 마를렌 디트리히를 “쫙 빠진 다리를 가진 마더 테레사”라고, 마릴린 먼로를 “어떠한 해답도 없는 영원한 퍼즐”이라고 요약하는 촌평가이기도 했다. 또한 그는 “요즘은 영화 만들 때 시간의 80퍼센트는 비즈니스에, 나머지 20퍼센트만을 실제 제작에 사용한다.”며 할리우드를 쏘아붙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 말이 당시의 할리우드에만 국한되는 것이겠는가. 영화의 완성도보다 단기흥행을 목적으로 마케팅에 열을 올리는 한국영화 앞에 놓인 강퍅한 현실을 보면서 빌리 와일더가 생각나는 것도 이런 때문이다.
연재를 마치면서
빌리 와일더의 영화세계를 단편적으로나마 탐색하겠다며 [선셋 대로]를 쓰기 시작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끝이라니. 예정대로라면 3편으로 끝났어야 할 것을 욕심을 부려 늘려놓았고 연재의 마지막에 해당하는 [하오의 연정]을 완성했다. (애초에 생각했던 [키스 미 스투피드]와 [빅 카니발] [뜨거운 것이 좋아] [아파트 열쇠를 빌려드립니다]는 후일로 미룰 생각이다.) 지난 2개월 여간 빌리 와일더의 작품들과 만나는 동안 더 없는 공부를 할 수 있었으며 거장의 그늘이 얼마나 넓고 짙은지를 새삼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정말로! 한 없이 행복했음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앎의 미천함을 빙자하여 거장의 세계를 왜곡한 것은 아닌지 심히 근심스럽기까지 하다. 이는 그만큼 이 공간을 찾는 독자들의 수준이 높고, 다양한 층위를 구성하고 있기 때문인데, 혹시라도 오독의 소지가 있거나 필자가 미처 간파하지 못한 부분이 있으면 언제라도 조언해주시길 바랄 뿐이다. 후속 글은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의 거장 루키노 비스콘티의 작품세계를 살펴볼 생각이다.
- 2007.01.07 백건영(영화평론가)
편집장
# by | 2007/10/09 10:30 | 네오이마주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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